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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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nterview] “남이섬은 하찮은 것도 소중히 여깁니다”

12월 4일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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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남이섬(南怡ー)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에 있는 섬이다. 남이 장군의 묘역이 있는 문화유적지이자 관광휴양지로 개발된 곳이다. 현재는 세계 122개국 130여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연간 총 330여만명이 찾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둘레가 약 5km 안팎의 작은 섬이지만 1960년대부터 나들이터로 이름을 떨쳤다. 최근에는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가평역에서 남이섬으로 바로 연결된다. 한편 2010년 세계에서 14번째, 한국에서는 최초로 유니세프 어린이 친화공원(Unicef Child Friendly Park)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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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 민병도
[수재 민병도]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라 구릉지로 형성된 작은 봉우리였다. 1944년 청평댐을 만들 때 북한강 강물이 차서 생긴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내륙의 섬이 되었다. 금융인, 출판인이자 문화예술 후원자인 수재 민병도(1916~2006)가 1965년 토지를 매입, 모래뿐인 불모지에 다양한 수종의 육림을 시작했다. 1966년 경춘관광개발 주식회사를 설립해 종합휴양지로 조성해 오던 중, 1990년대 말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을 극복하고자 2000년 4월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상호를 변경해 꾸준히 관리해 오고 있다.남이섬은 2001년부터 ‘문화예술 자연생태의 청정정원’이란 이름으로 재건을 선언하고 환경과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다. 환경 분야는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및 YMCA, YWCA 등의 시민환경단체와 함께 재활용 운동, 환경감시, 환경 순화적 개발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지역사회와 교육복지 분야는 지역 고등학교와 다문화 미혼모 복지기관, 독립유공자 지원을 위한 대한광복단, 유엔난민기구 등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또한 문화 분야는 유니세프, 유네스코 등 기관, 순수 예술 작가, 그리고 종합예술축제 등의 후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최인호의 <겨울나그네> 촬영지, 그리고 강변가요제 개최지로 알려지며 행락객들의 유원지로 인식되어 왔으나, 2001년 12월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대만,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권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이에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예술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남이섬 부사장이자 ‘스콜(SKAL) 서울 클럽’의 회장인 민경혁 부사장을 만나 남이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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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혁, 남이섬 부사장]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남이섬에서 부사장 직을 맡고 있는 민경혁입니다. 이렇게 Legend 매거진을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저희 남이섬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문화예술 관광지인 ‘남이섬’을 찾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남이섬은 1965년 나무 한 그루 없던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들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육림(育林) 사업으로 일구어진 숲입니다. 그간 끊임없는 발전과 위기를 극복하며 이제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수십년 동안 어려웠던 시기도 많았는데, 특히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시기에는 남이섬 역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남이섬의 주축을 이루고 계셨던 많은 사람들이 남이섬을 떠나게 되면서 그 위기의 심각성은 더욱 가중되었죠. 당시 저는 금융과 컨설팅 분야 일을 하며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남이섬 재건사업의 주축으로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신 강우현 전 남이섬 대표님의 업무를 돕는 정도의 위치로 남이섬 재건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평일에는 제가 하던 금융 분야 일을 하며 주말에 시간을 내어 강우현 대표를 도와 틈틈이 일을 하다가 2004년도부터 정식으로 남이섬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가 맡은 직책은 기획홍보팀장이었으며 그렇게 남이섬의 일을 배우며 15년간 남이섬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부사장의 직책으로 남이섬 관련 업무 전반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남이섬을 조성한 저희 조부님은 금융가로 제일은행장과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하셨습니다. 퇴직 후 그동안 모아두셨던 급여와 퇴직금, 그리고 간간히 투자하셨던 자금을 회수하고 전 재산을 털어 남이섬을 구입하셨죠. 이후 대한민국 최초 시내면세점인 ‘남문’의 수익금도 일체 남이섬 나무심기에 보태셨습니다.

당시 조부님의 주변에서는 강남 개발이 가시화되던 시점에 왜 굳이 불모지인 작은 섬에 육림사업으로 전 재산을 투자하냐며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부님께서는 먹을 것 없는 헐벗은 우리나라에 울창한 숲이라도 조성해 그 숲을 보며 국민들이 마음속으로나마 풍족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과 강한 의지 하나로 황무지 개발과 육림사업을 추진하셨습니다.

그때 조부님과 같은 뜻으로 대한민국 육림사업을 펼치셨던 분이 계신데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민병갈’이라는 분이십니다. 그분 역시 천리포에 땅을 인수해 불모지에서 육림사업을 펼치셨고 지금은 큰 수목원이 되어 많은 분들께 힐링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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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남이섬의 탄생 배경입니다. 그 당시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던 황무지의 육림사업은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고 50년이 넘은 나무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 혜택을 우리가 함께 누리고 영위할 수 있다는 것에 조부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과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남이섬이 육림사업을 추진할 당시 주한 외국인들은 휴가를 일본으로 많이 떠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이섬은 주한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당시 정부의 권유에 따라 관광지로 전환되었고 실제로 많은 주한 외국인들이 남이섬에서 즐거운 휴가를 보내며 적지 않은 외화가 해외반출되지 않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 국민과 주한 외국인의 사랑을 받게 되기까지 남이섬은 수 차례 부도위기를 극복해가며 재건사업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유원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예술 관광지’로 품격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80년대 당시 남이섬에서 ‘재즈 페스티벌’을 열만큼 문화예술 부흥과 신문화 도입에 많은 시도를 하기도 했죠. 지금은 많은 재즈 페스티벌이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지만 1980년대 당시에는 시기상조였기에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 시절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이섬은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 그 당시 활동했던 문인과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면서 그들과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갔습니다. 또 그분들이 직접 남이섬에 거주하면서 작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하면서 많은 예술인들이 남이섬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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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과 함께 하는 시낭송 대회,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음악의 강, 노래의 섬’ 프로젝트, 또 사단법인 한국문화복지협의회 주최로 ‘열린 음악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했습니다. ‘열린 음악회’는 현재 KBS에서 그 명맥을 이어받아 많은 분들과 함께 하는 공영 TV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이런 콘서트와 공연들 하나하나가 모여 남이섬에 ‘노래박물관’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재단법인 ‘노래의 섬’이라는 공익단체를 설립하고 노래박물관의 운영과 유지는 물론 음악과 관련된 많은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남이섬 재건사업의 중심에는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남이섬의 전임 대표이사를 지내시고 지금은 제주도에 제2의 남이섬으로 ‘탐나라공화국’을 조성 중인 ‘강우현’ 전 남이섬 대표이사님이 계셨습니다. 강 대표님은 남이섬에 상주하면서 남이섬에 잠든 기운을 깨우고 되살리기 위해 직접 터를 꾸미기도 하고 디자인적인 요소를 입혀갔습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많은 사람들이 남이섬을 찾기 시작했고 남이섬의 재건사업과 부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발판을 마련해주셨습니다. 2001년 남이섬 대표이사로 취임 후 울창한 산림에 여러 가지 동화적인 콘텐츠와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여러 문화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남이섬은 문화예술 콘텐츠의 산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우현 전 대표가 마련해 놓은 문화예술적 가치를 극대화하게 된 계기가 바로 ‘겨울연가’였습니다. 평소 남이섬과 친분이 있었던 겨울연가의 윤석호 감독님은 원래는 용평 등지에서 촬영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남이섬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드라마의 메인 촬영지를 남이섬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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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작된 ‘겨울연가’는 한국을 넘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큰 히트를 쳤고, 이는 지금의 우리나라 ‘한류’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 선진국 일본에서 ‘욘사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유래 없는 사랑을 받는 한국 드라마가 되었고, 이는 수많은 일본인 관갱객이 한국을 찾게 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콘텐츠 자체 보다는 콘텐츠를 보유한 사람에 투자하는 남이섬의 굳은 의지와 철학이 만들어낸 가치 있는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겨울연가의 대대적인 히트 이후 ‘한류’라는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도 이 ‘한류’ 붐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우리 남이섬 역시 ‘겨울연가’ 섬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계속 ‘남이섬’으로 남을 것이냐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연가라는 콘텐츠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다양한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남이섬 본연의 임무라 생각하고 남이섬의 색을 갖추어 나가기 위한 끝없는 도전을 이어갑니다.

2005년도부터는 ‘남이섬세계책나라축체’ 그리고 이후에 ‘남이섬국제그림책일러스트레이션공모전 – 나미콩쿠르’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며 문화예술 플랫폼의 역할에 충실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꾸준히 투자하게 됩니다. 겨울연가 촬영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남이섬 그 자체로서 매력적인 관광지이며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인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우현 남이섬 전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우리는 깨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 하지만 그 깨진 독에 물을 붓다 보니 그 물이 흘러 흘러 옆에 있던 나무들을 살찌우고 그 나무의 열매가 다시 독 안으로 떨어졌다. 그 열매들이 독의 깨진 부분을 메우며 지금의 남이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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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이섬’은 ‘남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섬’은 ‘(콘텐츠를 가진)남들이 그들의 꿈을 펼치기 위해 애용하는 남들을 위한 (플랫폼으로서의)섬’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분들이 남이섬을 찾아오는 ‘남의 섬’이 되면 결국 그 남들이 자기 섬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섬’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남이섬이 ‘남의 섬’ 그리고 ‘나의 섬’이 되기 위해 많은 분들께 콘텐츠 창작과 공연을 할 수 있는 터전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홍대에서 버스킹 하는 가수들에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남이섬어쿠스틱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남이섬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매력적인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그 누구라도 남이섬에 와서 공연하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하고자 합니다. 음악과 미술을 하는 사람 글에게 ‘남이섬’이라는 무대와 전시공간이 항상 열려있다는,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입니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남이섬에는 ‘남이섬 공예원’이 있습니다. 많은 유리작가와 도예작가 분들이 남이섬에서 거주하며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남이섬을 가꾸고 아름답게 만드는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 단순한 가로등도 그분들의 손을 거쳐 멋진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고, 관광객에게는 색다른 관광 콘텐츠가 되어 남이섬, 작가, 관광객 모두에게 이로운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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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왔고 우리 남이섬도 겨울에 걸맞은 많은 관광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하얗게 쌓인 눈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14만 평의 깨끗한 눈밭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남이섬은 하찮은 것도 소중히 여깁니다. 별 볼 것 없는 한겨울이라 하더라도 가마솥에 갓 쪄낸 찐빵, 그리고 가마솥을 달구는 장작의 나무 타는 향내, 모닥불이 주는 온기, 그리고 가마솥 솥뚜껑을 열었을 때 얼굴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등 이런 하찮고 소소한 모든 것들을 겨울에만 만끽할 수 있는 스토리 관광자원으로 재탄생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광객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항상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광자원이건 주변에 항상 접하는 사소한 물건이건, 바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를 정작 우리 자신이 아끼고 발전시켜 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남이섬은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또 이야기를 담아 선 보임으로써 다른 관광지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생성해 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밖에 나가 원가가 저렴한 이태리 음식 ‘파스타’를 먹기 위해 2~3만 원을 소비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조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성이 담긴 ‘김치찌개’는 1만 원이 넘으면 비싸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일본을 보면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일본을 ‘날 생선을 먹는 야만인’이라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뉴욕의 맨해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음식은 일본의 ‘스시’입니다. 일본은 도쿄만(灣) 부둣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간단하게 먹던 ‘스시’라는 음식을 대중화시키고 나아가 세계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은 ‘스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Rice ball covered with raw fish라는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쓰는 대신 그들만의 음식을 브랜드화시키고 세계화시켰습니다.

‘한식’이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한식을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한국에는 수많은 한식당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다니는 어디에선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식의 고품격화를 위해 오늘도 총력을 다하는 식당도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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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나라 관광콘텐츠나 문화예술 역시 우리가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품격을 높이고 세계 속에서 최고의 것으로 인정받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등한시하거나 낮게 보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높게 평가해주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시대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자원이 변변치 않아 어렵다고 푸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문화유산이나 관광명소는 만들어가는 것이지, 옛 것을 그냥 단순히 보여주는 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내국인 관광객들 또한 밋밋한 전각들이 이어져 있는 건물군으로서의 궁궐이 아니라, 그 곳에서 펼쳐졌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설, 신화, 등을 각 전각들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손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관광의 품격이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테니까요.

이제 한 해가 마무리되고 또 하나의 희망찬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자입니다. 지나간 2018년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다가오는 2019년을 후회하지 않도록 잘 준비하시길 권합니다.

남이섬 사람들이 농반진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단어가 ‘좌우명’입니다. 이는 우리가 갈림길에서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또 다른 갈림길을 마주치게 되는 것은 운명이니, 그냥 딛고 넘어서라라는 의미입니다. 왼쪽으로 가도 또 다른 갈림길이 나올 것이며, 오른쪽으로 가도 똑같은 갈림길은 분명히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했건 간에 이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들이 나를 이루고 대한민국을 이루게 됩니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자꾸 뒤돌아 보며 후회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자신이 결정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한 길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갈림길에서 그때그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며 과거를 아쉬워하는 마음보다는 미래를 대처하는 슬기를 갖는 삶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남이섬이 지난 50여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다가오는 2019년 새해에도 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실 여러분 모두를 응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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