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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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황무지에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운 ‘남이섬’…세상을 움켜쥔 ‘맨손의 기적’

방치됐던 모래밭에 3년 연속 300만 관광객 방문, 대한민국 관광표준 지속

IMF 파산 직전, 임직원들이 개인 담보대출 불사 문화관광지 지켜내
외국인 130만 명 찾아오는 정년 없는 평생직장

“대한민국 관광 자존심을 지켜나가겠습니다”

황무지에 뿌리내린 남이섬을 만나다.

남이섬(사장 전명준)은 무대가 되고 직원들은 배우가 돼 관객 역할을 맡은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면서 잠시라도 들를 수 있는 곳, 날마다 에너지로 가득하고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강 상류에 반달처럼 떠있는 대한민국 대표 국민관광지인 남이섬. 이곳엔 연간 130개국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매년 33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남이섬 입장하는 관광객. ⓒ남이섬

작년 한 해 남이섬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이 330만 명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9.1% 증가했다. 이는 2014년(308만 명)과 2015년(302만 명)을 넘어서는 역대 최다 방문객 수치다. 특히 남이섬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두드러졌다. 외국인 방문객은 약 130만 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중국(35만), 대만(18만), 홍콩(15만), 태국(14만), 말레이시아(13만), 베트남(10만), 인도네시아(9만) 싱가폴, 필리핀(6만) 순으로 방문을 했다. 토고, 온두라스, 몰도바처럼 1명이 방문한 국가도 있다.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작년 한해 남이섬을 찾은 국가는 127개국에 달한다.

 

ⓒ남이섬

 

ⓒ남이섬

남이섬은 경제와 관광, 학문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왜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찾아올까. 한류 열풍이 세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사실 그 진앙은 바로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시설물이나 물질적 상품판매에 앞서 다름의 감성체험을 제공하려 했고 설렘과 추억의 이미지를 매일같이 생성해 왔다.
이처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유독 남이섬에 몰리는 이유엔 감성과 문화를 앞세운 남이섬만의 특별한 배려 정책을 손꼽을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비결이 있었기에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또 그 성공에 이르기까지 어떤 수많은 노력과 좌절을 겪어야 했을까? 남이섬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계절 관광지이지만 직원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의 남이섬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게 아니다.

▲1966년 겨울, 남이섬 이태리포플라나무길(현 메타세쿼이아길 위치). ⓒ남이섬

 

▲1985년 남이섬에서 야외행사를 즐기는 시민들. ⓒ남이섬

이전으로 거슬러가 보면 먹고 살기 바쁜 시절, 관광이라는 용어도 낯설 던 지난 1965년 북한강 상류에 모래톱이 방치돼 있었다.

 

한해에도 몇 번씩 강물만 차오르면 고립돼 무성한 수초에 쌓여있던 황무지였지만 그래도 몇 가구는 터전을 떠나지 않았다.

 

1960년 당시 이 곳 주민이었던 황득수 씨는 “1944년 청평댐이 생기고 물이 차올라 섬이 되었을 때는 나룻배를 타고 춘성 방하리를 드나들곤 했다”고 회고했다.

 

1965년 정부의 외압에 맞서 한국은행 총재직을 사퇴한 민병도(2006년 타계) 선생이 섬을 사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왜 황무지를 사느냐며 만류했다.

그러나 민병도 선생은 “국민들의 문화쉼터가 필요한 날이 올 것이오”라며 그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불모의 땅에 주민들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지만 황폐한 모래밭은 심는 족족 말라죽었다.

 

그렇지만 잣나무,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고 또 심어 뚝심으로 꿋꿋하게 버텨 오늘에 이르렀다.

묘목을 심고 잔디와 꽃을 가꾼 사람들 가운데는 지금까지도 남이섬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남이섬의 주인공인 ‘종신직원’이다.

 

ⓒ남이섬

 

민병도 선생은 2006년 “푸른 동산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유지을 남기고 타계했지만 직원들은 정년 없는 평생직장으로 살고 있다.
조구형 선장은 “남이섬은 단순하게 문화공연을 하는 곳이 아닌 우리 민족의 근면하고 성실한 한국인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며 “직원들이 함께 모여 역사를 들여다보고 우리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며 더불어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가 곧 찾아온다고 하지만, 우리 관광 현실은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은 중국의 장가계, 황산, 계림, 만리장성 같은 장대한 절경도 없고 유럽처럼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또 동남아시아와 남미처럼 자원부국도 아니다.

ⓒ남이섬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남이섬은 청춘들이 일탈하는 유일한 탈출구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손님이 없어 속수무책의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IMF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강우현 사장(제주남이섬 부회장)이 연봉 100원에 취임했다. 잘나가던 디자이너 강우현은 남이섬을 살리겠다고 했을 때 관광객은 물론 돈도 직원도 없었지만 소주병, 나무토막, 유리조각 등만 남아 있었다.

 

그는 남들이 쓰다 버린 보도블록, 화장품 병, 타다 남은 소나무, 떨어진 은행잎을 가져다 쓰며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당시 강 사장은 안타깝게도 연봉 100원에 취임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20여 명 남은 직원들에게 남이섬을 살리겠다며 개인 담보까지 불사하며 운영자금을 대출받았다.

꿈이 현실이 돼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6년 남이섬은 우리나라 단일관광지로는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국제관광지로 성장했다.

1세대부터 시작 돼 아직도 우리 문화의 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남이섬에는 현재 400여 명이 일하며 기적적인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대기업과 같이 철저한 시스템으로 수집, 관리되는 고객 명단 하나 없지만, 전명준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소탈하게 나눈다.

 

또 자신이 맡은 역할은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고객을 맞이한다는 기본 정신이 지켜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전명준 남이섬 사장은 청춘을 바친 일터, 평생을 보장하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지켜오고 있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유일하다시피 평생직장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남이섬이다.

연공이나 직급과 같은 기존관념적 인사제도를 없애고 순환근무방식을 통해 80살 까지 일하도록 하는 평생정년제도를 정착시켜 기반을 마련했다.

▲전명준 남이섬 사장.

전 사장은 “‘내가 좋아 미치고, 내가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더 좋은 남이섬을 만들고 싶다는 꿈, 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리더, 49%와 51%의 차이, 그 1%를 잡아라”고 힘주어 말한다.
안정된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13년간 섬지기를 자처했던 전명준 사장이 말하는 남이섬 입사자격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는 “학력·경력·성별·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부지런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남이섬 재산이기 때문”이라면서 “고객 서비스에 원가 따지지 않으며 손끝 한번 더 지나가는 진정성이 국제관광지로 변모케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일이 즐겁지 않으면 인생도 즐겁지 않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직원과 고객이 함께 만들어낸 가족 같은 유대감, 무모해 보이지만 꼭 달성해내고야 마는 집념이 지금의 남이섬이다.

또 요즘 부정청탁법으로 혼란스럽지만 남이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행사 수수료를 없애고 관광 콘텐츠 자체에 감동하는 고객층을 구성했다.

광고나 홍보비용을 안 쓰는 정직한 마케팅과 임직원들의 밤낮 없는 손끝 정성은 매일같이 관광의 새로움을 생성하고 있다.
쓰레기를 태우고 난 재는 도자기 재료로 쓰이고 가을 낙엽은 하트 조형물로 새롭게 태어난다. 세계 각국의 옷을 입은 눈사람과 이슬람 기도실, 할랄식당에서 남이섬 임직원의 배려와 정성이 물씬 묻어난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같은 소수 국가의 리플렛까지 만들어 제공하는 다른 문화에 대한 배려는 협약 없는 외교에 가깝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광이 쇼핑이나 K-POP에만 쏠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수익금 전부는 관광 콘텐츠 생성에 재투자되는 국민기업 남이섬의 공감 철학은 이제 북한강 주변이 동반 성장하는 한국관광의 자존심 벨트로 실천되면서 이 시대 우리가 모두 실천해야 할 교훈이 되고 있다.

노래방은 공연장으로 바뀌었고 술판을 벌이던 건물들은 전시관이 돼 연간 600여회의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밖에 유니세프, 광복회 등 사회단체와 공존하며 100년 관광 자존심 지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남이섬은 유니세프, 환경학교, 녹색가게와 같은 시민단체와 10년 이상을 함께하며 희망의 끈이 되려는 체험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왔고 독립유공단체인 광복회를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농약을 치지 않고 환경을 보전하니 천연기념물 미선나무, 백진달래가 자라고 청설모와 다람쥐가 뛰노는가 하면 희귀종인 크낙새, 오색딱따구리도 날아들고 있다.

호반새, 소쩍새 울음소리가 상쾌한 아침을 여는 남이섬은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구상 어디에도 찾기 힘든 기이한 관광지로 변모해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기적을 이뤄냈다.
설립자 민병도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이섬을 찾은 것은 지난 2006년 2월 고인은 한류열풍으로 관광객이 북적대는 섬을 보며 “섬 숲에 새가 많았으면 좋겠다. 개발은 하지 말고…’’ 한마디를 남겼다.

남이섬은 단순히 들르는 곳이 아니라 고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열정과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준다. 꿈과 열정을 잃어버린 채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지만 소중한 활력소가 돼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이섬 전명준 사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고 조풍연, 윤석중 선생 등과 [조선어 큰사전]을 펴낸 설립자의 국민 사랑 정신이 [남이섬 문화재단]과 [재단법인 노래의 섬]에서 활발한 대중문화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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