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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부가 ‘예타 면제 사업’ 선심 쓰니… 남이섬 위로 교량 세우려 해”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9.06.24 03:13

[최보식이 만난 사람]  위기에 빠진 남이섬… 전명준 대표

 

생면부지의 전명준(57) 남이섬 대표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국민 휴양지 남이섬의 머리 위로 교량이 건설됩니다. 예비 타당성 면제 사업으로 확정된 ‘경춘 2국도’의 노선안에 그렇게 돼있습니다.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담당 공무원을 만나봐도 답이 없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서울에서 벌어졌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지방이라 별로 뉴스가 안 됩니다.”

올 초 정부는 지방의 대규모 토목 사업에 대해 경제성과 환경·안전 문제 등을 따지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줬다. 모두 23가지 사업으로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다. 발표 당시 ‘총선용 토건(土建)’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경춘 2국도'(왕복 4차선 자동차 전용 도로)가 포함돼 있다.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방법에는 전철, 특급 전철, 양양 고속도로, 46번 국도 등이 있다. 주말과 성수기에 일시 도로 정체가 있을 뿐 평일에는 한산하다. 물론 도로 하나 더 생기면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경춘 2국도’는 경제성 논란으로 그동안 퇴짜를 맞은 사업이었다.”예타 면제 사업으로 확정되자 강원도는 최단거리 노선(약 32.9㎞)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경기도 가평군이 ‘경춘 2국도 노선의 80% 이상이 경기도를 지나게 되는데 우리 쪽에도 낙수 효과가 있어야 하지 않나. 가평 읍내를 지나가는 노선이 돼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어요. 지자체 간에 이해 충돌이 생기자, 지난 3월 국토부 원주 지청에서 발표한 안이 남이섬 머리 위로 교량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노선안으로 지자체끼리 타협을 본 겁니다.”

나는 여태껏 남이섬에 가본 적이 없었다. 양양 고속도로 설악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30분쯤 달렸다. 점점 외진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펜션·음식점·편의점·대형 주차장 등이 밀집한 동네가 나타났다. 남이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연락선 선착장이었다. 마중 나온 전명준 대표가 말했다.

“남이섬 연락선 운항 총횟수는 하루 637회입니다. 교각 구조물이 들어서면 당연히 교통 장애가 생깁니다. 운항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연간 300만명이 남이섬에 들어왔지만 앞으로는 100만명이 배를 못 타게 된다는 뜻입니다. 매년 9만5000명이 이용하고 있는 선착장의 집와이어 운행도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이섬의 추정 영업 손실만 연 2300억원입니다. 인근의 음식점, 숙박 시설, 운수업체 등 지역 상권에도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겁니다.”

―북한강 위로 교량을 건설하더라도 굳이 이 지점에 할 이유가 있을까요. 노선을 정할 때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을 둘러봤을 것 아닙니까?

“책상에 지도를 펼쳐놓고 선을 그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사업 예산에 맞춰 노선을 정한 겁니다. 이 수역(水域)에는 연락선뿐만 아니라 제트스키와 모터보트 같은 수상 레저를 즐기는 인파도 몰려듭니다. 만약 교량이 건설돼 투척물이나 고드름 등이 배로 떨어지거나 물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면 인명 사고로 이어집니다. 해상 교통 안전 진단부터 해달라고 요청해도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공무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에 교량을 세우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알 텐데요.

“우리가 계속 공문을 보내자 춘천시 담당 공무원이 와서 ‘남이섬이 직접 국토부에 다른 노선안을 제시해보라’고 했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우리 머리 위로 교량이 건설 안 되게 해달라는 거지, 일개 민간 기업이 어떻게 정부와 노선안을 협의할 수 있습니까.”

선착장에서 남이섬까지는 배로 5분 걸렸다. 평일 낮인데 탑승객이 적지 않았다. 이 중 절반가량이 동남아인이었다.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들이 어떻게 알고 이 외진 곳까지 오는지 신기했다.

“작년에 300만명이 남이섬을 찾았습니다. 이 중 120만명이 130국에서 온 외국인입니다. 국내 단일 관광지로는 가장 많은 국가의 외국인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무슬림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남이섬에는 이슬람 기도실과 할랄 인증 기관의 공인을 받은 레스토랑도 열었습니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여행사에 수수료를 주겠지요?

“수수료를 준 적이 없습니다. 질 높은 문화 관광 콘텐츠와 자연, 서비스로 찾아오게 해야지, 그렇게 해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여기는 순전히 외국 관광객들이 원해서 옵니다. 남이섬은 외국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남쪽 지방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섬을 몰라도 동남아 사람은 대부분 남이섬을 압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어떻게 남이섬을 알게 된 겁니까?

“우리는 주한 대사관이나 외국 기업 사람들에게 남이섬에 와서 자국의 문화 공연이나 요리 시연을 하도록 했습니다. 남이섬은 주한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풍 코스입니다. 이들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면 남이섬 홍보 대사가 됐습니다.”

―과거의 남이섬은 대학생들의 MT 장소였지요?

“그때는 술판을 벌이고 고성방가를 하던 ‘유원지’였습니다. IMF 시절 발길이 끊겨 남이섬은 매각 위기까지 몰렸어요. 남이섬이 찾은 살길은 문화 예술과 자연 생태였습니다. 예술가들을 불러 공연하고 그림도 그리게 했어요. 카바레 건물은 안데르센동화홀로, 오락장은 전시실로, 선술집은 레스토랑과 북카페로 바꿨습니다.”

남이섬에서 본 북한강.
남이섬에서 본 북한강.
―유명세를 치른 것은 KBS TV 드라마 ‘겨울연가'(2001년)에서 배용준과 최지우의 키스신 촬영 장소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본 중년 여성들이 성지순례하듯 찾아왔지요?”그 덕을 봤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효과는 1년을 못 갑니다. 우리의 모토는 ‘남이섬은 오늘이 좋고 내일은 또 새롭다’입니다. 관광지는 고객이 재방문하지 않으면 영속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문화·공연 콘텐츠를 계속 개발해 날마다 남이섬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말레이시아의 한 여성 작가는 남이섬을 13번이나 방문했다고 합니다.”남이섬에서는 바깥세상과 다른 가치가 통용되고 있었다. 우선 섬 전체가 모두 흙길이었다. 먼지를 막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뿌리고 비 온 뒤에는 팬 웅덩이를 메우는 수고로움을 받아들였다. 나무보다 높은 건물도 짓지 않았다. 섬에는 메타세쿼이아 등 나무 3만 그루가 있지만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했다. 농약 대신 낙엽을 발효시킨 자연 퇴비를 썼다. 그래서 벌레가 많다. 벌레가 많으니 까막딱따구리·올빼미·솔부엉이·호반새·흰눈썹황금새 등 새도 많았다.

또 섬에서 발생한 오·폐수는 거의 북한강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식당이나 숙박 시설, 화장실 등에서 나오는 오·폐수는 1차 정화 처리를 해 논으로 보낸다. 그런 뒤 2차 정화 과정을 거쳐 크고 작은 연못을 지나게 하면서 증발시키고 있다. 그는 자연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에 대해 설명했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5년 전 강원도에서 ‘외국인이 많이 찾으니 남이섬에 면세점을 설치해 수익을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 창출이긴 하지만 거절했습니다. 남이섬은 자연과 예술 문화를 즐기러 오는 곳이어야지, 명품 백을 사는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관광객들은 자연과 예술 문화를 즐기고 난 뒤 명품 백 쇼핑도 원하지 않을까요? 수익을 많이 올려 남이섬에 더 투자하고 직원 봉급도 더 주면 좋은 일이지요.

“저는 눈앞의 수익보다 지속 가능한 남이섬을 원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 450명은 모두 정규직입니다. 커피를 뽑는 직원, 식당에서 음식 나르는 직원, 매표소 창구 직원도 모두 정직원입니다. 처우도 좋은 편입니다.”

―모두 정규직이면 인건비 비중이 높지 않습니까?

“고용이 안정돼야 서비스에 책임을 갖게 됩니다. 콘텐츠가 없어 한 철 벌어 일 년 먹고사는 관광지에는 일용직을 씁니다. 하지만 남이섬에는 사시사철 관광 문화 콘텐츠가 있습니다. 한 철 장사가 아닙니다. 관광객들도 계절과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인건비 비중이 높지만 그만큼 관광객들이 찾아오므로 수익을 냅니다.”

―정년이 80세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80세 정년이지만 이후에도 원하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 공예 업무를 맡고 있는 분은 86세입니다. 청춘을 남이섬에 바치고 정년까지 일하면 퇴직 이후 회사가 매달 80만원씩 연금을 지급합니다. 현재 7명이 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정년이 그렇게 늦으면 신입 직원이 들어올 자리가 있겠습니까?

“여기는 365일 연중무휴이고 특히 주말이 바쁩니다. 지리적으로 외진 곳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사실 힘듭니다.”

그는 2004년 42세 나이로 남이섬에 입사했다. 첫 직장은 종합상사였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몇 년간 근무했다. 직장을 나와 ‘스포츠 토토’라는 벤처를 창업했다. 돈방석에 앉기 직전에 무너졌다. 그는 ‘애를 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신문에서 ‘평생 일할 사람과 함께하는 남이섬’이라는 한 줄짜리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 남이섬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세탁물을 빨고 장작을 패고 현수막을 달았습니다. 그 전까지 해본 적 없는 그런 허드렛일이 즐거웠어요. 가족과 떨어져 섬에서 10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 그가 5년 전 남이섬 대표가 됐다. 그의 가치관과 경영 철학은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정부의 탁상행정’이라는 돌발 변수가 지금의 남이섬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을 뿐이다.

“정부에서 선심을 쓴 ‘예비 타당성 면제’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강원도는 혹시 예타 면제가 번복될까 봐 하루라도 빨리 착공하려고 합니다. 말이 안 새나오도록 하는 데만 신경 쓸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을 안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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